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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들이/여행/경상도

경주 가볼만한곳 문무왕수중릉, 봉길해수욕장,대왕암해변, 이견대

9월 어느날...

바다에 가서 모래놀이 하고싶다던 시로짱, 바닷물에 들어가보고싶다던 하루짱의 바람대로 바다에 갔다.

경주시내에서 동쪽으로 30km정도 더 가면 나오는 곳.

 

경주지역에는 5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요,

몇년전부터 해수욕장이라는 명칭대신 해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어요.

해수욕장은 왠지 여름한철만 이용할것같잖아요.

그래서 사계절 관계없이 해변을 이용햇으면 하는 바람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해요.

 

요즘 버드파크가 있는 동궁원도 그렇고 경주가 볼거리가 참 많아졌어요.

동궁원 관련 소식은 차후에 다시 포스팅할게요.

 

 

 

(구)봉길해수욕장인 대왕암해변이에요.

 


하루짱과 함께 파도를 원없이 봤던 날이기도 해요.

 

 

파도거품이 마치 새하얀 우유거품같아요.



 

 

 

앗! 갈매기닷!!

 

 

 

하루짱은 아빠와 함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바다에 발을 담그고는 싶은데 용기는 안 나고...

결국 아빠품에 안겨 바닷가를 거닐어봅니다.

 

 

 

 

그러다가 조심조심...첫발을 내딛어보아요.


 

 

 

 

멀리 문무왕수중릉이 보여요.

마침 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풍경이 정말 예뻐요.


 

 

     문무왕수중릉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영주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업적을 남긴 문무왕이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죽자,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례를 지냈다.

     그의 유언은 불교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에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로 부르게 되었다.

     이 능은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바위이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인다.

     대왕암에 올라보면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중발굴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이 판석(板石)처럼 생긴 돌 밑에 어떠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사방으로 마련된 수로와 아울러 안쪽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바위를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더구나 바위의 안쪽에 마련된 공간에 사방으로 수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관한 탑의 형식에 비유되고 있다.

     즉,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이 마련되어 있는 인도의 산치탑의 경우나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 석탑 하부의 사방에 통로를 마련한 것과 같은

     불탑의 형식이 적용되어 사방에 수로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지금까지 그러한 예가 없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커다란 개 한마리가 주인도 없이 돌아다니길래 개를 피해(?) 이견대로 갔어요.




 

 

       이견대

 

       사적 제159호이다.

       삼국통일을 이룩한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깃들인 해중왕릉 대왕암(大王巖)이 보이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앞에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인용된 이 절 안에 있는 기록에는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끝내지 못하고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었다.

       아들 신문왕이 681년 7월 7일에 왕위에 올라 682년에 공사를 끝냈다.

       금당(金堂) 뜰 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하나 뚫어 두었는데, 용이 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게 하기 위한 것이다.

       뒤에 용이 나타난 곳을 이견대라 하였다고 한다.

       682년 5월에는 왕이 이 곳에서 용으로부터 옥대(玉帶)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만들 대나무를 얻었다고 한다.

 

 


 

 

 

바람이 불어 너무나 시원했던 이견대.

먼저 온 사람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번안곡을 부르고 있어 더욱 즐거웠던 시간이었어요. ^^